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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협 13화 '내 사제.' 희두는 그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그리고 산자락을 벗어나 벌판으로 접어든 뒤에도. 사제(師弟). 같은 스승 아래에서 배운 자를 그렇게 부른다. 그러니까 신라 북단에 있다는 그 사람은, 철혁과 같은 스승에게 배운 자라는 뜻이었다. '...스승님의 스승님.' 희두는 문득 두 계절 전 어느 날을 떠올렸다. 청류를 처음 배우던 날. 성관에게도 가르치겠다는 말에 자기가 반발했을 때, 철혁이 했던 말. '내 스승님은, 배울 그릇이 되는 자에게는 출신을 따지지 않고 가르쳤다. 너희들에게는 사조가 되겠군.' 그때 희두는 뭔가를 물으려다 말이 잘렸다. "스승님." "뭔가." "사조님 말입니다." 철혁의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아주 조금이었지만. "그날 제가 물으려던 걸, 스승님이 .. 2026. 9. 10.
대협 12화 철혁은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순간 철혁의 왼손이 움직였고, 희두는 그 궤적을 보지 못했다. 검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자의 오른팔이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그리고 그자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낼 수 없었다. 아혈이 짚인 것 같았다. 철혁의 손가락이 그자의 목덜미와 어깨, 허리를 차례로 짚었다. 몇 번 스치듯 지나갔을 뿐인데, 그자의 몸에서 힘이 완전히 빠져나갔다. 희두는 그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얻었다. 동굴 입구 쪽에 셋이 쓰러져 있었다. 하나는 엎드린 채, 하나는 옆으로 누워 있었고, 하나는 바위에 기대어 쓰러져 있었다. 셋 다 움직이지 않았다. 희두는 그 광경을 한참 들여다봤다. 이상했다. 싸운 흔적이 없었다. 바닥이 파이지도, 돌이 튀지도 않았다. 희두가 .. 2026. 9. 6.
대협 11화 손이 떨렸다. 희두는 그것을 멈추려 애썼다. 그러나 멈추려하면 할수록 더 떨리기만 했다. '진정해라.' 스스로에게 되뇌었지만 소용없었다. 옆구리에서 번지는 서늘함이 자꾸 그쪽으로 신경을 끌어당겼다. 그가 다시 다가왔다.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급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아는 걸음이었다. "검이 흔들리는군." 검이 들어왔다. 희두는 물러섰다. 흘리려 하지 않았다. 흘리려 하면 읽힌다는 걸 방금 배웠으니. 계속해서 피하고, 물러났다. 뒤로, 옆으로, 다시 뒤로. 두 걸음, 세 걸음. 등 뒤로 동굴 벽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는 몰린다.' 알면서도 다른 수가 없었다. 흘리면 읽히고, 맞부딪치면 힘에서 밀린다. 남은 건 물러서는 것뿐이었다. 결국 등에서 불쾌하고 딱딱한 촉감이 전해져 왔다. 그의 검이 위.. 2026. 9. 3.
대협 10화 계절이 또 한 번 바뀌었다. 동굴 밖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다시 새순을 밀어 올렸다.흙바닥에 그려진 지도는 몇 번이나 지워졌다 다시 그려졌고, 그때마다 선이 조금씩 늘었다. 희두는 이제 위(魏)의 관문 이름을 열 개 넘게 외웠고, 진검이 목 앞까지 다가와도 눈을 감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아침, 철혁이 말했다. "짐을 챙겨라." 희두는 죽 그릇을 든 채로 고개를 들었다. "예?" "오늘 밤 떠난다." 성관도 손을 멈췄다. 두 사람이 동시에 철혁을 봤지만, 그는 이미 등을 돌린 뒤였다. "어디로 가는데요?" "가면서 말하마." "왜 갑자기—" "챙기거라." 말투는 평소와 같았다. 철혁은 종일 동굴 안을 정리했다. 정리라기보다는 지우는 것에 가까웠다. 화톳불 자리를 파헤쳐 재를 흩었고, 벽에 걸어둔 것들을.. 2026. 8. 27.